목요일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편
(23: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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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3편은 매우 아름답고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찬양시입니다.
그래서 찬양으로도 많이 불려지고, 또한 성경을 사랑하는 분들이 암송하기도 합니다.
이 시편을 읽거나 들으면 목가(牧歌)적인 풍경이 보입니다.
목가는 ‘목자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전원(田園), 그러니까 시골의 평화로운 풍경을 서정적으로 노래하는 소박한 시가를 말합니다.
목자가 양무리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푸른 풀밭이 보이고, 맑은 시냇물이 보입니다.
때로는 골짜기에서 위험에 처한 양을 목자는 끝까지 찾아가 구출하기도 합니다.
실제적으로 목동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 시편에 대하여 보다 깊은 통찰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본래 양은 아주 겁이 많은 초식동물입니다.
그래서 들판에 데리고 나가면 긴장하고 항시 경계를 한다는 것입니다.
양은 들판에서 눕지 않습니다.
깊은 밤 잠이 들 때에도 자기들끼리 모여서 어깨를 기대고 서서 잠이 든다고 합니다.
다윗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집에서 목동으로 자랐습니다.
그래서 양이 푸른 풀밭에 눕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전적인 신뢰입니다.
더 이상 아무 것도 긴장하지 않으며, 목자를 완전히 의지하는 양의 몸짓입니다.
다윗은 그렇게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5절에 나오는,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다’는 말씀도 특별합니다.
양은 그림과 달리 대부분 깨끗하지 않습니다.
그 털이 끝도 없이 자라다가 무거워서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불결한 상태를 매우 좋아하는 해충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양의 코는 축축하기 때문에 파리들이 꼬여서 코의 점막에다가 알을 까는 일들이 생긴다고 합니다. 이런 종류의 파리를 구더기파리, 혹은 코파리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것은 양에게 엄청나게 고통을 주는 해충입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양의 머리에 기피제(忌避劑)에 해당하는 기름을 발라서 양들의 건강을 챙기고 해충으로부터 보호한다는 것입니다.
5절을 다시 보시면, 갑자기 원수들이 등장하지 않습니까? 그 구더기 파리가 바로 양의 입장에서는 원수가 됩니다. 그리고 다윗의 입장에서 다시 5절을 보면, 다윗에게도 구더기파리 같은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 복잡한 ‘관계’의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 의탁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특별히 시편23편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전하려는 은혜는, 1절입니다.
평생 이 시편을 사랑하고 암송했지만,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바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구절입니다.
한글로 옮기면 시적인 표현으로만 보이기도 하지만, 그 원문은 미래형 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지금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부족함이 없게 될 것을 믿습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에 나오는 다윗의 인생을 읽어보면, 다윗이 그렇게 호사를 누리거나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행복의 상태에서 인생을 살았던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금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서른 즈음까지는 도망자의 인생을 살았고, 그 이후로 통일왕국의 왕이 되었으면서도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고달픈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들이 내란을 일으켜서 도망을 가야 했고, 그 말년에도 서로 왕이 되겠다고 권력다툼을 하는 아들들로 인하여 평강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믿으면 모든 것이 잘 풀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러합니까?
그럼 아브라함은, 모세는, 다윗은, 느헤미야는… 그리고 예수님은 과연 무엇입니까?
이분들은 믿음이 형편 없어서 굶주리고, 고생하고, 버림받고, 광야를 헤매고, 마침내 십자가의 죽음을 당했다는 말입니까?
욥기를 보면, 그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하나님 도대체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그럼 너만은 도대체 왜 이런 고통을 당하면 안된다는 말이냐?”
인생은 본래 누구에게나 혹독한 것입니다.
남의 인생이 쉽고 행복해 보이는 것은, 일종의 착시일 뿐입니다.
아무도 고통이 없는 인생이 없고, 아무도 상처가 없는 마음은 없으며, 아무도 결핍이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각오해야 합니다.
고생할 것을, 배신당할 것을, 외로울 것을, 아프고 힘들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믿음은 그런 각오 너머의 위로이고 은혜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목자로 따른다 하더라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가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셔도, 여전히 구더기파리와 같은 원수들이 꼬이고, 모함하고, 미워하고, 희롱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련은, 다윗으로 하여금 여호와를 더 의지하게 만들 뿐, 영혼의 목자를 떠나거나 의심하게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윗은 이미 미래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모든 욕망이 채워져서 부족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설사 그 어떤 시련과 역경을 통과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내 목자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의심하지 않겠다는 마음의 결정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성경은 ‘믿음’이라고 정의합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삶의 결핍을 넘어서는 신뢰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가장 잘 아시고, 나에게 가장 적당한 것을 주신다는 확신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자에게 실망은 없습니다.
믿음은 우리로 노래하게 하며, 삶의 모든 순간을 누리게 합니다.
믿음은 겁 많은 심장으로도 풀밭에 눕게 만들며, 원수 앞에서도 마치 잔칫상을 받는 사람처럼 담대하게 살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불행이 있다면, 그것은 환경이 척박해서가 아니라,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다윗의 믿음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더 이상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불행에 빠지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만의 유일한 인생을 나름 값지고 귀하게 여기며 뿌듯하게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에 우리가, 믿음에 부요한 자가 되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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